draft 단편 삼류소설

암호 도둑 – 하

아파트 세탁실에서 스콧 고메즈, 말리사의 현재 남편, 과 우연히 마주쳤다. 평일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 나는 재택 근무 중이었지만, 스콧은 그날 오프였는지 세탁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시끄럽죠?” 미안한 표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단둘이 있는 세탁실이 무거웠는지 스콧이 먼저 내게 물었다.
“아이들이잖아요. 어쩔 수 없죠.” 그리고 내가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 합시다. 싸워봐야 좋아질게 없잖아요.”
전쟁 포기를 선언한 내가 먼저 제안했다. 알고보니, 스콧은 솔직 담백한 사내였다. 우리는 그렇게 부드러운 관계가 되었고, 그 날 저녁 동네 스포츠 바에서 맥주를 함께 했다. 사실 내가 의도적으로 가자고 한 것이다.
스콧은 지금 병원 구급차를 몰고 있다고 했다. 병원의 정식 직원은 아니고, 앞으로 개인 사업 라이선스를 취득해서 개인 구급차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아들이 둘, 전 부인은 폐암으로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지금의 아내는 병원에서 만났다고 한다. 얼굴과 몸에 타박상을 입고 있었는데, 쓰러진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였다고 그 당시 첫 만남을 회고했다.
직감적으로 가정 폭력임을 알고, 일부러 더 신경을 썼단다.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과 측은함은 사랑으로 이어졌고 곧 결혼도 했다고 한다. 거칠어 보이는 사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하니, 좋아 보인다. 그런데, 알코올 때문이었을까, 취중에 그는 그녀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토로한다. 이런, 알고 있었구나. 사실 오늘 처음 알게 된 나에게, 아무리 자니 블랙을 계속 내가 사줬다고는 하나, 그런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이상하기는 했다. 어쨌거나 이제는 나도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되어 버린 셈이다. 그런 나의 부담스러운 모습을 읽었는지 스콧은 내가 알아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고, 이혼소송이 끝나갈 무렵이었으니, 그녀가 더 곤욕스러울 수 있겠다는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는 분명 말리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결혼 구애를 하면서 임신도 알고 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혹시라도 결혼을 거절 하면 어쩌나 하여, 그때는 그냥 모른 척 했다고 한다. 말리사 역시 결혼을 원했던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임신 사실을 숨기고 결혼 허락을 한 것인데, 스콧은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친구 멋진 구석이 있다.
이젠 내가 개입을 해야겠다.
“말해라, 그녀는 틀림없이 널 속이고 있음을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네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 짐을 지금 당장에라도 덜어 주어야 한다.”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거지 같은 존에게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기를 바랐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하지는 않아 보였지만, 나는 말리사가 기다리고 있는 아파트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나는 스콧이 말리사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말했다.
“말리사, 스콧이 오늘 당신에게 꼭 할 말이 있다고 한다. 꼭, 들어줘야 한다. 안 그래?”
나는 스콧에게 무언의 다짐을 받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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