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들의 저녁식사 – 4

일국 제약을 처음 본 것은 5년 전, 정전 사고가 있었던 그 날이었다. 감사팀에 불려 가기 훨씬 전. 그러니까 ‘일국 제약’에 대해 모른다고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고객과의 일대일 대화 이벤트를 마치고, 다른 인턴 동료들과 호텔 행사장을 정리 한 후, 행사 차량으로 지원받은 승합차를 내가 직접 몰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컴퓨터에서 당일 작업한 자료와 파일들을 보안 2팀 컴퓨터 서버에 올려놓았다. 인턴사원이라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없어서 대부분 문서는 일지와 같은 보고서들뿐이었는데, 그날은 외부에서 진행한 고객들과의 일대일 대화 이벤트 때문에 다른 날보다 업무가 많았다. 어쩌면 늦게 퇴근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치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에 뿌듯했다.
업무가 끝이 나면 모든 문서는 중앙 보안 서버에서 관리 하도록 일과를 마무리해야 한다. 회사가 만들어 놓은 ‘크린 삭제 시스템’인데, 개인 컴퓨터에 있는 작업 파일을 정리하여 서버에 올린 후 남아 있던 문서를 지우는 과정이다.
근데 이건 뭐지? 보안을 위해 문서 삭제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웹 브라우저(Web browser) 역시 크린 시스템으로 정리하려는 순간, 무심코 웹 브라우저 뒤로 가기를 한 것이다.
일.국.제.약.
내가 일국 제약을 처음 본 것은 그 문서를 통해서였다. 문서는 요즘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휴대용 파일 포맷(PDF). 종이 문서를 스캔하여 전자파일로 만든 것인데, 대부분 손으로 쓴 것들이다. 대충 읽어 보아도 일지 같아 보이는 문서였다. 영어와 일어, 한글이 지저분하게 적혀 있었는데, 이걸 어쩌나 싶었다. 누군가 내 컴퓨터에서 웹 브라우저를 통해 PDF를 열람한 후 그대로 내버려 둔 것 같았다.
이대로 그냥 삭제한다고 해도 회사에서 문제 삼을 것 같지 않았다. 크린 시스템을 이용하면 말끔하게 지울 수 있을 것이고, 나도 모르는 업무 내용이라 문제 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누군가 내 컴퓨터를 만졌다는 사실이 짜증 났다. 그리고 괜한 호기심. 아무리 회사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컴퓨터라 하더라도. 순간 누가 그랬나 싶어서 파일의 경로를 찾아 원본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음원 재생 애플리케이션 속에 숨겼다. 가끔 내가 즐겨 숨기는 방법. 어쨌든 당시에는 나중에 알아볼 심산으로 그 파일을 숨겼는데, 감사팀에 불려 다니면서,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파일이 내 컴퓨터에서 발견되었다고 해도, 나는 모른 척하면 그만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루한 질문의 반복, 괜한 죄책감으로 나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감사팀 때문에, 나중에는 실토하고 그냥 회사를 그만두자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다행히 감사팀이 먼저 포기하였다.
감사팀에서 가져갔는지 내가 사용하던 컴퓨터는 다른 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잘됐다 싶어 머릿속에서 일국 제약을 깡그리 없애 버렸다. 덕분에 정직원도 되었다. 잊고 있었는데, 지금 재석이 그놈의 일.국.제.약을 꺼내 든 것이다.
“대체 철호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데 그래?”


소설은 전적으로 허구, 간혹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나 단체, 인터넷 사이트의 이름이 등장 하지만,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 국가 등을 비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소설은 그저 재미를 위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내들의 저녁 식사 – 3

“혹시, 일국 제약이라고 들어 봤나요?”
“아뇨, 처음 들어 보는데요?”
감사팀은 나를 불러 조사하였다. 일주일 동안 매일 불려 다녔다.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질문을 하고, 나는 답을 했다. 같은 질문의 반복은 나의 실수를 유도 하기 위한 술책으로 느껴질 정도로 지루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들의 의심은 나를 불안하게 하였다. 아무래도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무렵, 회사는 고문과 같은 질의와 심의를 끝내겠다고 말했다.
“회사에 고 명씨 대학 선배들 많죠? 특별히 자주 만나는 선배 있나요?”
글쎄요. 직접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선배는 없었다. 그저 오가면서 인사하는 정도.
“감사팀에서는 인턴사원 고명씨가 회사에 어떠한 불미스러운 행위도 없었던 것으로 결론 지었습니다. 물론, 의심의 여지는 있지만,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다른 외부의 도움이나 해킹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니, 관련 없음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되었던 보안 레벨의 상향 조정 이후 다시 원래의 보안 레벨로 돌아온 문제는 회사 측의 기술적 문제, 그러니까 회사의 실수입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회사에서는 노력할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과의 말과 함께 나는 바로 정직원 발령을 받았다.
정전이 일어난 그 시각, 나는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호텔에 있었다. 매년 계절마다 치르던 행사인 고객들과의 일대일 대화 이벤트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곳 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내가 직접 사내 전산시스템에 접속할 수는 없었다. 한마디로 불.가.능.
혹여 회사 내에서 슈퍼 레벨 계정을 갖고 있는, 예를 들자면 대표 이사급 계정 소유자가, 나에게 권한을 잠시 동안 부여해주고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았다면 모를까. 감사팀에서도 결론을 냈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이 되었다. 외부 침투 흔적도 전혀 없었으니, 순전히 회사 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회사 책임이다. 덕분에 나는 인턴 교육 이 개월 만에 정직원으로 발령받는 이례적인 주인공이 되었다. 대가 치고는 제법 달달했지만, 다른 직원들이나 동기 인턴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았다. 그래서였는지 한 참 동안을 아주 작은 벌레가 내 몸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한다. 긁어도 긁어도 시원하지 않았다. 감시. 관리. 사찰, 어디서? 결국 회사는 나를 회사에 묶어 두고 지켜보기 위해 정직원으로 채용한 것이 분명했다.
“5년 전 정전 사고 기억나? 나 그 날 이후 바로 정직원 발령받았잖아.”
“물론 기억나지, 그때는 우리 모두 네가 어느 이사 조카라고, 그런데 사실은 다른 동기였잖아. 회사에서 너 감시하려고 정직원 발령 낸 거라고 그랬잖아.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그때 감사팀에서 계속 물어본 것 중에 하나가 ‘일국제약’ 이었어.”


소설은 전적으로 허구, 간혹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나 단체, 인터넷 사이트의 이름이 등장 하지만,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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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의 저녁 식사 -2

“일국 제약이라고 들어 봤어?”
재석과 나는 다른 테이블로 옮겼다. 다른 동기들은 술이 정도를 넘어섰는지 우리가 다른 테이블로 옮긴 것을 모르는 듯했다.
“나는 어제 처음 들었는데, 뭔가 관련이 있어 보였거든.”
15년 전, 지금의 회사는 다른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동기들이 만든, 사적인 모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과는 다르게 인터넷 벤처 기업으로 성장하였고, 지금은 IT 분야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대기업 반열에 올라 있다. 이토록 빠른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치적으로 적대 관계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인데, 쉽게 말해서 절대 권력에 항상 순종했다고 하면 되겠다.
그런 회사가 나는 좋았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낭만주의적 혁명을 기획해 봐야 금세 배반당하는 세상 아닌가. 그냥 꼬박꼬박 챙겨 주는 임금이나 받아먹고사는 것이 당시 내 인생 최고 목표, 그래서 5년 전 회사에 지원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운 좋게 정직원이 되어 아직까지 기생하며 잘 살고 있다.
“본 적 있어 일국 제약.”
“뭐?” 재석이 놀란다. “그렇게 알려진 회사가 아닌데, 설마 철호와 만났었어?”
내가? 그럴 리가, 나는 오늘 오후에 철호가 어디로 끌려갔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럼 내가 어떻게 일국 제약을 알고 있는가. 그 이야기를 하자면, 나의 인턴 시절을 더듬어 보아야 한다.
5년 전, 나는 보안 2팀에서 인턴 교육을 받고 있었다. 당시 인턴 교육은 6개월, 그러나 나는 그 사건 이후 바로 정직원 발령을 받는 행운을 얻는다. 인턴 교육 두 달만에 얻은 특혜. 덕분에 다른 동기들의 시샘과 따돌림(?)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정전사고, 그날의 시작은 놀랍게도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시작되었다. 정전. 어떠한 극한 상황에도 작동하는 자체 전원 공급 시스템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20초가 넘는 시간 동안 사내 전산시스템이 완전히 죽었던 사건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자체적으로 비밀 수사를 했다. 보안팀, 정보팀 그리고 감사팀이 함께 움직이면서 모든 경우의 상황을 여러 번 시뮬레이션하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의심할 만한 그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외부 해킹 흔적도 없었고, 인터넷 일반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문제없이 계속되었으니, 사건은 조용히 종료를 했다. 그러나 정전 사고 이후 내 개인 계정의 보안 레벨이 최고로 조정되었다가 다시 인턴 레벨로 돌아온 흔적이 나중에 발견되어 나는 곤란한 상황을 맞이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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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의 저녁식사 – 1

고기를 굽는 연기 때문에 더욱 북적거리는 고깃집이다.

“뭐야 벌써 시작한 거야. 오늘은 삼겹살이라고 하지 않았나? 웬일로 한우?”

천장은 높고, 어두운 고깃집이다. 당연히 오래되었으니 지저분하다. 그러나 우리 동기들은 늘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다. 벌써 5년째.

재석 옆에 앉는다. 뭐가 그리 급한지 술잔이 달려오고 내려놓기가 무섭게 소주를 채운다. 닥치고 술부터 마시라는 것인가. 철호 상황을 알려야 하나. 일단 술 한잔을 마신다.

“어이, 고 명! 도대체 감사 1팀에서 찾는 게 뭐야?”

난들 아나, 그것이 무엇인지. 오늘 아침에 감사 2팀으로 파견 간 네가 뭘 안다고, 짐작도 못한다. 어디로 끌려갔는지 알 수 없는, 철호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최근에 정보 보수팀이 꾸려졌다. 명칭만 그렇지 이제 까지 전자 서류로 정리 못한 나머지 미분류 서류들, 혹시나 등록 못한 비문을 찾아 사내 보안 시스템에 등록하는 일을 위해 만든 팀. 지금 본사 별관으로 사용 중인 구건물은 과거 본사 건물이었다. 10년 전에 일어난 작은 화재로 지금은 옛 서류와 비문을 그곳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미 중요한 정보와 서류는 현 사옥 보안팀이 잘 갖고 있지만 분류 정리가 끝난 건 아니었나 보다. 정보 보수팀이 할 일은 남은 자료를 정리하는 것. 혹시나 숨어 있는 중요 서류를 찾는 것이라 한다. 그래도 10년 전에 끝낸 일인데, 뭐가 남아 있을 거라고. 정말 모르겠다.

“철호는? 야 오늘 철호가 안 보인다?”

“오늘 연락이 안돼, 뭔 일 있나?”

이제서야 철호의 신변을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정황을 내가 여기서 말할 수는 없다. 지금 난 감사 2팀 소속 아닌가. 옆에 있던 재석이 뭔가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뭐야?

“나 어제 철호, 만났었다”

“뭐?”

재석은 자신의 술잔을 의미 심장하게 마셨다. 나도 내 잔을 비운다. 재석이 자신의 잔과 내 잔을 채우면서 말했다. 어제 이상한 말을 하더라.

“넌 무슨 일인지 알아? 왜 철호를 데려갔는지?”

갑자기 높아진 내 목소리를 다른 동기들이 눈치채면 어쩌나 걱정하는 재석이 나를 조용히 시켰다. 어제만 해도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철호가 이야기한 게 진짜 이상한 것 같아. 더구나, 짜식이 엄청 즐거워하고 있었거든. 마치 금광이라도 찾은 사람처럼.

다른 동기들은 재석과 나의 대화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흥겹게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누군가 한 번 제대로 먹자고 시킨 한우 등심 때문일 것이다.

“어제 철호가 무슨 말을 했냐 면…”


소설은 전적으로 허구, 간혹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나 단체, 인터넷 사이트의 이름이 등장 하지만,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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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의 저녁 식사 – 시작하기 전에

아주 짧은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래전에 생각해 놓았던 소재였는데, 간결하게 이야기를 다시 재구성하여 끝내겠습니다. 좀비 장르를 좋아해서, 처음에는 바이러스 재난 이야기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천한 실력도 문제였지만, 자료를 찾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여 포기 하였습니다. 그래도 아까운 이야기 같아서 아주 짧은 이야기로 써보려 합니다.

언제나, 어떠한 피드백 환영합니다.

joonho@me.com

소설은 전적으로 허구, 간혹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나 단체, 인터넷 사이트의 이름이 등장 하지만,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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